[단독] 천덕꾸러기 된 물류센터…하도급사 "내 돈 내놔" 갈등

입력 2023-07-30 15:57   수정 2023-07-31 15:21

“여기는 들어갈 수 없어요.”

30일 경기 이천 설성면에 있는 연면적 5만㎡(약 1만5000평) 규모 B물류센터 공사현장은 ‘접근 금지’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텅 빈 현장을 지키는 것은 하도급업체 사장들. 한 업체 대표 이모씨는 “시공사가 작년부터 공사비를 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유치권 행사를 위해 점거를 시작했다”며 “사가겠다는 사람도 없고, 돈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하도급사 “수백명 임금체불” 원성
물류센터를 지은 시행사들이 센터를 인수할 사업자를 찾지 못하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과 하도급 업체에게 줄 공사 대금 등을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 공급에 공실률이 급증하면서 사업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PF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금융사들이 쏟아져 나와 금융권 전반으로 대출 부실이 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B 물류센터를 지은 S 시행사는 금융권으로부터 받은 PF대출금 1000억원을 반년째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물류센터가 매각될 것을 예상하고 대출받았지만 지난 2월 준공 후 물류센터를 인수하겠다는 업체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증권사 관계자는 "정상적인 사업장이라면 준공 전 인수자를 확보해야 한다"며 "금융사는 자금 회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 물류센터를 관리하는 신탁사는 "매각이 안될 경우 대출을 내준 대주단 요청에 따라 공매를 진행해 물류센터를 처분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시장 가격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 대주단 손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은 올해 1분기 15.9%까지 상승했다.

시공사는 하도급업체 25곳에도 100억원에 가까운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시행사가 물류센터 매각에 실패하면서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물류센터 출입을 막아선 한 하도급업체 대표는 "하청업체와 관련된 직원만 수백명으로 이들 모두 수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최대 공급에 공실률 급증
물류센터 사업은 최근까지만 해도 수억 원의 차액을 챙길 수 있는 사업으로 각광 받았다. 우선 개발업자들은 토지 계약금의 10%를 마련해 물류센터를 올릴 부지를 확보한다. 이후 금융권으로부터 브릿지론(단기 대출)을 받아 토지 잔금을 치르고 지자체 인허가 과정을 거친다. 증권사와 은행 등 금융권에서 수백억원 대 부동산 PF 대출받아 브릿지론을 상환한 뒤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한다. 물류센터가 완공되면 시행업자는 센터를 매각해 PF 대출을 상환하고 수억원 대 차액을 챙기게 된다. PF는 금융권이 미래에 예상되는 수입을 고려해 시행사에 대출을 내주는 방식을 뜻한다.

하지만 최근 물류센터 매각에 실패한 시행사들이 속출하면서 PF대출 상환에 빨간불이 켜졌다. 물류센터 사업성이 곤두박질치자 시장에서 물류센터를 사겠다는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자기자본 없이 토지 계약금 10%만 가지고 수억원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몇 년 사이 공급이 폭증하자 물류센터 과잉공급이 발생한 것이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기업 CBRE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도권 물류센터(연면적 3만3000㎡이상) 평균 공실률은 17%로 지난해(10%) 대비 7% 포인트 상승했다. 저온 물류센터의 공실률은 42%를 기록했다. 공실률 상승은 물류센터 공급이 늘면서 시작됐다. 올해 2분기(4~6월) 수도권 물류센터 공급량은 124만1220㎡(37만평)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올해 총공급량은 650만㎡(196만평)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계속되는 신규 공급으로 공실률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물류센터 인수를 약속한 운용사마저 계약을 파기하고 있다. 운용사들이 계약금(5~10%)을 미리 지불하고 준공 전 입도선매 계약을 맺었지만 무리한 인수로 인한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해 계약을 철회한 것이다. 지난 5월 M투자운용사는 인천 중구의 한 물류센터의 최종 매입을 거부했다. 경기 안성시의 물류센터엔 매입확약 미이행 통지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물류센터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계약금을 포기하고 물류센터를 매입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임차 계약도 줄줄이 무산되고 있다. 이달 초 오뚜기는 경기 파주시의 물류센터 임차 계약을 철회하고 임대인 측인 현대인베스트먼트운용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초 인천 남청라의 한 물류센터 시행사는 PF 대출 만기까지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다. 이후 980억원 규모의 PF대출 만기를 두달 연장하면서 임차인을 구해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마을금고, 물류센터 뒤늦게 투자
제1금융권은 2년여 전부터 물류센터 부실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개발 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 등은 그 빈자리를 차지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한국신용평가원과 업계에 따르면 새마을금고가 건설부동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56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류센터 개발은 이 중 1조5000억원대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인허가를 받은 수도권 물류센터 148건 중 118건(79.7%)이 사업성 악화로 착공하지 못한 것을 고려했을 때 투자금 중 상당수가 부실 위험에 처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성 없는 개발업자들도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부동산 개발업 관계자는 "2020년 당시 경기도 일대에 물류센터 부지를 알아보러 다니는 업자들이 굉장히 많았다"며 "개발사업에 대한 기본적 이해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개발업자들 사이에선 새마을금고가 대출을 잘 내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전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마을금고는 금융 전문성이 부족한 개별 단위 금고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사업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며 "관리 감독을 강화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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